p.26 <무분별과 불이중도>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는 사실은 곧 '이것'과 '저것'은 서로에게 기대어 있음으로써 존재함을 뜻한다. 곧 '이것'과 '저것'은 떼어 놓으려고 해도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 즉 '하나'임을 뜻한다. 곧 '이것'은 '저것'에 의해 '이것'일 수 있고, '저것'은 '이것'에 기대어 '저것'일 수 있다. '이것'과 '저것'은 동시생(同時生) 동시멸(同時滅)이다. 불이(不二)의 관계다.
EMC @admin
2021-01-28 04:38
님페이아. 그 사람이 당신을 사랑할 때,
처음에는, 안 좋은 표정의 당신을 본 뒤에는 계속 마음이 쓰인다.
그러다가 당신에게만 종종 약한 모습을 보인다.
마지막엔 당신이 바라봐줄 때까지 이곳저곳에 버드키스를 한다.
아주르. 그 사람이 당신을 사랑할 때,
처음에는, 당신의 표정 변화에 은근히 신경쓴다.
그러다가 당신의 등허리를 쓸어내리거나 어깨를 쓰다듬는 등 스킨쉽의 농도가 짙어진다.
마지막엔 당신은 그에게 마치 신앙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다.
님페이아는 수인의 힘은 잃었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왔으니 그걸로도 계속 추앙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종주에게는 걸림돌이었을 거라 어떻게든 약점을 잡고 트집을 잡아서 끌어내리려고 애썼을 텐데. 님페이아에게 환속할 뜻이 없었다면 거기에 맞서서 오히려 종주의 실책을 거론했겠지만, 그 대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를 택함.
정체성의 대부분이 신에게 선택받은 수인 및 그로써의 삶뿐이었다면 그게 사라진 후 방황했겠다만... 동아 10년 동안 그건 그거고 현재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은 스스로 확립해야 한다는 걸 톡톡히 깨달아서 이런 선택이 가능했던 것 같고. 자신이 그대로 죽지 않고 살아돌아온 이유는 바로 그 삶을 살아보기 위함이라 여기지 않을까. 전에는 자신의 위치와 체면을 생각해서 보다 신중하게 말을 고르고 행동했지만 지금은 발진도 하고 의사 표현도 훨씬 뚜렷할 듯...
책에서 오늘 추천받은 곡은 윌리엄 버드 작곡의 아뉴스 데이.
아뉴스 데이는 자비와 평화를 청하는 기도문이다. 요즘 심중이 몹시 혼란하고 화도 쉽게 내고… 붕 떠서 현실을 반 밖에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아 걱정하며 잠들었었는데, 그 잠에서 깨고 나니 들을 음악이 이 곡이 었다는 건 제법 신통한 우연이 아닐지.
혼자서는 돌파할 수 없는 문제의 정체로 발생하는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참아내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어느새 그 분노와 무력감이 체화되어서 나중에는 내가 이 스트레스를 견디려 애쓰기 전에는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이 특히 두렵다. 거기에 묶이지 않기 위해 수시로 모난 마음을 스스로 다독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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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C @admin
2021-01-25 03:30
이제는 수련을 수련이라 부르는 것도 그대 정도인걸.
수련은… 한때는 나비라 불리기도 했던 님페이아는, 이제야말로 오롯이 혼자만의 삶을 살아야 하는 거야.
30년이면 기다리기만 한 세월로는 충분히 길지 않았소?
남은 30년은 먼저 찾아가기도 하고, 안부를 몰라 불안에 뗠기만 하는 일도 없이… 그렇게 지내고 싶은데.
이런 마음을 가지고 공 곁에 머물면 안 되는 건 알아.
하지만, 어찌 해도 괴롭다면…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님파는 다원에서 불리는 이름.
EMC @admin
2021-01-29 20:44
웹툰 댓글 중에 주인공과 대립하는 캐릭터를 무작정 헐뜯는 것들 보면(진짜 무슨 매크로 돌리는 것 같은 수준의 하나 같고 저열한 멸칭과 언사들...) 마음이 안 좋아질 때가 있다. 그 캐릭터가 뭔가를 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뭔가 마음놓고 미워하고 비난할 대상이 필요할 뿐인 거로 보일 때가 있어서 ^_ㅠ
옛날부터 있었던 정서인데 단지 그때는 댓글 시스템이 없어서 남의 속내를 이렇게 적나라하게 볼 일이 없었던 탓에 나만 여태 몰랐던 것뿐일 수도 있지만.